안녕하세요? 돌토리입니다. 성경 말씀을 보며 묵상한 것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삶의 필요나 어려움이 있다면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 안에서 쉼을 누렸으면 합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 왕에 대해 성경공부 한 것을 나누는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4) 사람의 시야가 더 중요한 것인가?

 

 

사무엘의 책망을 들으면서도 그의 마음 속에는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백성들의 시선이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자신과 사무엘 사이에 불화가 있음을 알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위장하려고 했습니다.

 

(삼상 15:30) -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 이라는 지위를 즐겼고,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하나님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렇기에 백성들의 마음이 떠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었습니다.

 

(5) 영적 분별력을 잃음

 

그는 점차 영적으로 흉내만 내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영적 분별력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삼상 28:7) -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그는 급격하게 두려움을 느겼습니다. 결국 그는 쫓아내었던 신접한 자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흉내만 내었던 영적인 삶의 결과였습니다.

 

(딤후 3:5) -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 삶의 교훈

 

대학을 다니던 캠퍼스 시절에는 그래도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겼고, 주님과의 교제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여 열심히 주님을 배워나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씩 사회를 경험하게 되고, 여러 가지 지혜롭게 행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자 주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을 의지하게 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잘 지낼 수 있다는 인식도 생기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 성경공부를 통해 크게 배운 것은 하나님에게로의 시야가 조금만 멀어진다고 해도 세월이 많이 지났을 때는 이미 정도(正道)에서 크게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에 대한 시야가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으나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에 대한 시야가 벗어나자 결국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게 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히 12:2)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항상 시야를 예수님께 고정해야 합니다. 한 번의 벗어남은 두 번의 벗어남을 낳고, 그것이 계속적으로 쌓이면 언젠가는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멀어지게 됩니다. 사울의 교훈을 마음에 잘 새겨 항상 주님의 길을 잘 따르는 제자와 일꾼으로 성장해야 하겠습니다.

 

(대하 27:6) -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

 

글쓴사람 돌토리
  

안녕하세요? 돌토리입니다. 성경 말씀을 보며 묵상한 것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삶의 필요나 어려움이 있다면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 안에서 쉼을 누렸으면 합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 왕에 대해 성경공부 한 것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던 사울 왕

 

 

(삼상 9:21) -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왕이 되기 전의 사울은 겸손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미약함을 잘 알고 있었고 왕이 되기에는 부족한 사람임을 겸손히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왕으로서의 자격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겸손이라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약 4:6) -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2) 하나님 중심의 시야가 벗어남

 

사울은 왕이 되고 시간이 지나자 점차 변해갔습니다. 시야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백성들)으로 점차 옮겨지게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 하게 되었는데, 제사장 만이 해야할 영역을 침범해 스스로 번제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보면 사울의 마음이 그 당시 어떠했는지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삼상 13:11-12) -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그는 백성들의 시선을 너무나 많이 신경썼습니다. 사실 사무엘이 정한 날을 맞춰 오지 않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울의 마음은 불안감만 가득해졌습니다. 결국 스스로 번제를 드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때 사무엘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를 했습니다.

 

(3)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의 죄를 지음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난 후,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모든 소유를 남김 없이 진멸하라고 전합니다. 그런데 이 때에도 사울은 또 백성들이 신경쓰였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도 지낼 겸, 백성들의 마음도 얻을 겸, 그는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 하고 기어이 좋은 것들은 남기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불순종의 죄를 인정하기 보다는 합리화하려고 했고, 하나님은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삼상 15:22) -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순종이 다른 어떤 제사보다 낫습니다. 아무리 합리화하려고 해도 죄는 죄일 뿐, 다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또한 하나님 앞에서 매우 더러운 것일 뿐입니다.

 

글쓴사람 돌토리
  

안녕하세요? 돌토리입니다. 성경 말씀을 보며 묵상한 것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삶의 필요나 어려움이 있다면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 안에서 쉼을 누렸으면 합니다. 이번에는 건강관리의 중요성 그 세번째 묵상으로 잠언 17장 22절을 중심으로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5) 영과 몸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잠 17:22) -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영적인 측면과 신체적인 측면은 서로 연결이 되어있다. 바꾸어 말하면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영이 깃든다고도 할 수 있다. 건강관리를 잘 할 경우 영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강관리는 영적인 삶의 축복을 위해서라도 필수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건강관리를 삶의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반드시 사수해나가야 할 것이다.

 

(6) 부지런한 자가 운동을 통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잠 13:4) -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그러나 건강관리를 꾸준히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육체의 연단으로 다가올 수 있을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단순 육체노동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말씀으로 도전을 받고 동기부여를 받아야 할 것이다. 운동을 훈련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해야 성장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한다.

 

(7) 건강관리가 선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포기하지 말자.

 

 

(갈 6:9)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건강관리가 하나님 안에서 영적으로도 선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포기하지 말자. 꾸준히 해 나갔을 때, 선한 성장의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단지 1,2달하고 끝날 것이 아니다. 평생 하나님께서 주신 몸을 잘 관리한다는 사명으로 믿음을 가지고 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분명 이렇게 운동을 꾸준히 해 나가 목표를 이루는 경험을 해 나간다면 분명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8) 인내할 때 열매를 맺는다.

 

 

(히 10:36) -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인내하며 꾸준히 해 나간다면 하나님 앞에서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약속하신 것이 그 무엇이든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단지 운동의 영역만이 아니다. 이건 앞으로 시련과 고난이 내게 닥쳐올지라도 이겨낼 수 있는, 심령이 강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건강관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몸을 가꾸어 나가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여러 성품을 닮아나가는 데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글쓴사람 돌토리
  

안녕하세요? 돌토리입니다. 성경 말씀을 보며 묵상한 것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삶의 필요나 어려움이 있다면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 안에서 쉼을 누렸으면 합니다. 이번에는 건강관리의 중요성 그 두번째 묵상으로 누가복음 2장 52절을 중심으로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눅 2:52) -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1) 예수님의 본을 따라 성장할 것

 

 

예수님의 본을 따라 제자와 일꾼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성장과정에 대해 잘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는 지혜와 키가 자라갔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셨다. 즉, 지적, 신체적, 사회적, 영적 영역에서 균형있게 성장해 나가셨다는 것이다. 어느 한 부분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신체적인 영역에서의 성장에 대해 좀 더 묵상해 보았다.

 

(2) 보디 빌더처럼 되라는 것은 아니다.

 

 

건강은 관리해야 하는 것이지 그것에만 빠져 너무 몸매에만 치중한다던지 할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작 중요한 예수님에 대해 소홀해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병약한 상태라서 주님과의 교제, 인격계발, 사역에 안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면 적절한 관리를 통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3) 운동은 분명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

 

 

(딤전 4:8) -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나 육체의 연단은 약간이라도 유익이 있다는 측면도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의 영(영적), 혼(감정적), 육(신체적)은 연결되어 있다. 몸이 아프면 영적으로도 쉽지 않고, 또 감정적으로 어려우면 몸이 아프기도 하고 영적으로도 축복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기에 이 세 가지를 잘 관리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에는 신체적인 측면을 잘 관리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묵상해 보려고 한다.

 

(4) 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잘 관리하라고 주신 것이다.

 

 

(고전 6:19-20)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귀한 몸이다. 알콜 중독이라든지 담배라든지 안 좋은 것들로부터 피해야 하는 것이고 소중하게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이지 안 좋은 것들로 가득채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더 건강할 수 있도록 잘 관리하는 것은 감정적인 면이나 영적인 면에서도 분명 더 좋은 영향을 줄 이다.

 

글쓴사람 돌토리
  

안녕하세요? 돌토리입니다. 성경 말씀을 보며 묵상한 것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삶의 필요나 어려움이 있다면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 안에서 쉼을 누렸으면 합니다. 오늘은 베드로전서 4장 8절 중심으로 묵상한 내용입니다.

 

 

(1) 뜨겁게 서로 사랑할 것

 

(벧전 4:8) -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실제로 내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차게 되면 허다한 죄를 덮을 수 있는 것 같다. 사랑에 대해서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내 삶에 큰 본이 된다고 생각한다.

 

(2) 하나님과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의 본


(요 3:1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 5:8)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나에게 있는 그 죄가 너무나 더러움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인해 바로 심판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셨다. 예수님 또한 하나님과 동일한 마음으로 나를 위해 온전히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3) 죄는 미워하고 사람은 사랑할 것


이렇든 그 사랑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해 질수록 사람을 죄로 인해 물든 죄인으로서의 사람으로 보지 않고 죄는 죄고 사람은 사람으로 따로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분명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그러나 그 죄를 충분히 덮어버릴 정도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마음을 가득히 채운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죄는 미워하고 사람은 사랑하는 것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나는 죄인일 뿐이므로 사랑이 그 안에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기에 그 분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저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사랑의 마음을 더욱 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죄로 인해 사람을 보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온전한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해 주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온전히 받아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글쓴사람 돌토리
  

안녕하세요? 돌토리입니다. 교훈이 되는 글 하나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함께 묵상하며 교훈이 되었으면 합니다.

 

 

배고프고 병들고 지쳐 있었습니다. 그래도 밥을 준다고 하니 냇물을 건너 오셨습니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징검다리를 하나 둘 조심조심하며 건너 오셨습니다. 옷은 남루했습니다. 추워보였습니다. 신발은 다 해어져 있었습니다. 얼굴은 검게 아니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그래도 조선족이 큰 소리로 “김씨 아저씨 저녁 자시러 오시라고 해라!” 외치니 세 명의 젊은 친구들과 함께 건너오셨습니다. 젊은 친구라야 60대 후반입니다. 이 할아버지는 79세였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룩함과 경외함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저는 이야기를 나누기 전 한 마디 말을 던졌습니다.


“왜 나오려고 하셔요?”
“찬송이나 마음 놓고 한번 불러보고 싶어서…”
눈길을 피하려 땅 바닥에 시선을 두고 우물우물 쏟아 낸 말입니다.
‘왜 탈출하려는가’라는 질문에 노인은 겸손하게 답을 하셨습니다. 
“찬송 한번…”
할아버지가 건너 온 그 냇물 소리마저 들리는 듯 했습니다. 허름한 집 마루에 걸터앉은 우리, 아니 그 분들의 모습이 잊혀질까 오히려 두려운 적막이 흘렀습니다. 
“언제 나오실 수… 있으셔요?”
“빠를수록 좋지 않을까요?”
순간 내 머리 속에는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미 65명의 탈출자들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여서 비용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방법과 이동할 길목들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공안들을 어떻게 설득시켜야 할지, 그리고 어느 산을 넘어야 할지, 아이들도 있다지 않는가? 긴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운 이들을 도울 것 뿐인데… 찬송 한 번 마음 놓고 불러보고 싶다는데 무슨 설명을 붙여야 할까?


‛도와 드리겠습니다’ 한 마디로 결론을 이끌려고 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말을 쏟아냈습니다. 순간 노인의 입속에서 흘러내리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결정하기 전에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그리고는 일어나 울타리 밖으로 걸어 나가고 계셨습니다.
한 10분이나 걸렸을까? 노인이 돌아오고 계셨습니다.
제 눈은 노인의 얼굴에 멈추었습니다. 그 거친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주먹을 쥐고는 몸을 곧게 세우셨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물었소이다. 저 미국에서 온 이목사가 우릴 돕겠다는데 따라 갈까요? 라고…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능력이 없어서 너희들을 북조선에 남겨두는지 아느냐?’고 하시는군요.”
서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노인의 어깨가 들썩거렸습니다.
“목사님, 매 맞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랍니다. 굶는 것도 하나님의 목적이랍니다. 혹시 기회가 주어지면 남조선으로 가서 찬송이라도 실컷 부르고 집에 가고자 했는데… 이 땅에 남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시니…”

숨소리가 거칠어지더니…


“어서 가시라요! 경찰이 온다지 않소?”
누군가가 노인에게 알린 모양이었습니다. 일단은 철수해야 했지만 저는 좀 더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가지고 간 돈도 드려야 했고, 노인의 말도 좀 더 들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서울로 가시자고 한 번 더 권하는 제게 노인은 “나도 아오. 자유가 무엇인지를… 예배당 종도 쳐봤고, 성가대도 주일학교 교사도 해봤지요. 하지만 이 자리에 머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시니… 자유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지 않겠소? 압네다. 나도 압네다. 자유라는 게 좋은 게지… 마음 놓고 성경 읽고, 찬송하고, 새벽기도 나가고, 헌금도 할 수 있고…”

노인 외에 다른 이들이 재촉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사를 드리려다가 무릎을 꿇고 노인이 신고 온 신발에 입술을 대고 우는 동안 나의 목에 눈물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재촉한 손길이 있어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드리고 “안녕히 계시라요.” 인사를 하자 그렇게 점잖았던 노인의 음성이 강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천국에서 만나자요!”


저는 죄인의 모습이 되어 노인에게 작은 소리로 “예, 천국에서 뵙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서둘러 떠나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분명하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작아지는 소리 뒤에 분명한 음성.
“환난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칼이랴!…” ‘죽음이라도’라는 말은 제가 생각해서 넣었을 뿐입니다. 
서둘러 산골짜기를 빠져 나왔습니다. 먼 길이었습니다. 
운전하는 아저씨는 예수를 믿은 지 몇 년 안 되는 조선족이었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나는 그냥 울어야 했고 운전하는 기사는 내 모습을 계속 확인하며 같이 울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궁금해진 나는 그 산골짜기를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 기사 아저씨를 찾아가 차를 대절해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 기사가 사뭇 공격적인 말투로 쏟아낸 말,
“무얼 하러 오셨오? 그 할아버지랑 노인네들이랑 그 가족들이랑 모두 죽었단 말이요. 수용소로 끌려가던 성도의 가족들이 모두 죽었다 하지 않소? 여섯 명의 젊은이들은 끌려가지 않겠다고 덤비다가 매 맞아 현장에서 죽었답니다.” 
기사 아저씨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누구를 비난하자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렇게 고난을 겪어야 하나? 할아버지와 함께 탈출하려던 그들의 생의 목적은 뭐였지? 지금까지 살아 온 것도 지옥 같은 것이었는데…  굶주리고 매 맞고, 억울함이란…
그런데 하나님은 너희들의 고향인 북한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고… 아! 그리고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는가 말입니다. 79세 노인네야 그렇다 치자구요. 오랫동안 믿음을 지켜온 자랑스러움이라도 있지 않는가 말입니다. 하지만 젊은이들, 아니 어린아이들은…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채로 죽어가야 했다니… 노인의 말대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복음을 전하는 삶의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 중 ‘왜 이렇게 고난당해야 했나?’를 생각하지 않은 이들이 없을 것입니다. 때때로 저 역시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복음을 전하다가 울면서 글을 쓰기도 합니다. 왜냐구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사랑 고마워…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그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데…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가 끊어질 수 있을까?
주님은 나 같은 죄인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북한의 성도들,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여러분과 저를 통해 그들을 위로하고자 하신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공산권 국가였던 헝가리의 성도들도 그 말씀 붙들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북한의 성도들도 그 말씀 붙들고 주님이 회복하실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출처: http://blog.naver.com/jhunkim319/90158054195

 

글쓴사람 돌토리